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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문제

dankthedust 2021. 2. 21. 03:06

아버지의 전역과 함께 이사 온 집.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내 기억 속 첫번째 서울살이였다.

이제 정착할 곳이라고 생각하니 어린 아이에게 심어진 부담감은 상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군인아버지의 곁에서 이사를 다니며, 초등학교만 4번인가 다녔다.

나에게 남은 친구는 1~2년 마다 초기화 되었고, 정착할 곳에서의 내가 그곳에서 생활하며 이미 무리를 지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들에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 부담감은 내게 되려 악이었을까, 첫 시작부터 일이 그르쳐졌다. 한 친구의 테니스 공, 다른 친구가 가지고 놀고 있었고 한번 팅겨보려 했던 내 말이 그 친구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말다툼으로 번졌고 이내 싸우기 직전까지 갔다. 그때는 몰랐었다. 그 친구의 무리가 소위 일진과 같았던 무리였을 줄은.

이사 온 나 혼자를 두고 둘러쌓인 무리는 큰 압박이었고, 첫 입학한 중학교 생활의 시작부터 꼬인 날이었고 나는 도망치듯 피해다녔다.

그 친구가 무섭지는 않았다. 그 이후의 내 생활과 처음 보인 이미지가 안좋아지는 것이 두려웠었다.

 

다행인 것은 그 무리는 별로 나를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무난히 보낸 1학교 생활에서 후에 인생의 전환점을 줄 친구를 만났다는 것은 내게 제일 큰 행운이었다. 

 

첫 가입한 중학교 동아리는 농구부였다. 같은 동아리 첫 시간에 눈에 들어온 친구가 있었고,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잘생기기도 잘생겼으나, 그 친구에게서 막연히 느껴졌던 것은 '나에게 언젠가 큰 도움이 될 친구같다. 꼭 친구로 만들고 싶다'였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나를 피해 동아리 시간마다 도망갈 정도로 말을 걸었고 쫒아다녔다.

어떻게서든 연락하고 친해지고 그 친구에게 결국엔 귀찮지만 그래도 나름 친구는 됐다.

그러면서도 내 성격에 문제가 있었을까. 뭐든 잘 보여야 한다. 내가 이 중학교라는 큰 울타리안에서 정확한 위치를 잡아야 한다는 스스로 한 생각은 사실 속박이었고,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나대는 아이, 뭣도 없는데 나서고 사고만 치는 아이. 별명조차 나댄다는 말과 내 이름이 합쳐졌고, 이 별명을 싫어하면서도 속박을 풀어내지 못했다.

 

항상 집에 돌아오면 생각했다. 그 별명을 죽도록 싫어하는 나에게 대체 무슨 잘못이 있었길래.

어릴 적 누구하나 미워한 적이 없고, 잘 지내왔고 나름 한 위치는 잡아가며 살아간다 생각했는데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길래 그렇게 불리우게 되었나, 마냥 미웠다.

세상이 싫었고 미운 마음을 쌓아가면서도 무시당하게 될까, 행여 내게 친구하나 남지 않을까 무서운 마음에 아무렇지 않은 척,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증명할 것이다. 무시하던 그 손가락이 무안해지도록 만들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보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내가 옳다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옳았고 나는 바른 판단을 한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문제가 없다.

 

이 두가지의 생각 중에 뭐가 문제였을까? 누구의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