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오늘은 말실수를 한 적은 없는지, 혹여나 예전의 모습으로 또다시 나를 돋보이고 싶어 하지는 않았는지.

말실수를 한 것 같으면 대뜸 사과를 하기도 했고 하루 끝에 자책을 하고 다시 되새기기를 반복했다.

사과라는게 내가 잘못을 했건 하지 않았건 중요하지 않았다. 따져볼 기준을 내가 정하기엔 자격이 없을 것 같았고 사과라는 것이 혹여 작은 오해라도 불러온다면 작은 사과일 지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신경 쓰지 않았다 할 지라도 그럼 더더욱 좋은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라 생각했고 그냥 '한 것 같으면' 사과를 했다.

하루 단위로 나를 돌아보는 밤이면 내가 배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했다.

듣는 법과 경청하는 법 그리고 리액션을 배우고 내 말과 입지, 그리고 나서고 싶은 마음과 흥분되는 마음을 버렸다.

그때부터 나 자신에게 항상 강조 아닌 강요하는 신조가 처음 생겼다. 단순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자. 감정이 앞서지 마라"

단순하면서도 제일 중요한 말인 것 같다. 우유부단했고 내가 하는 행동에 이유는 없었다. 좋게 말하면 눈치를 안 보는 것이지 안 좋게 말하면 눈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이제 나에게 항상 자문하는 말은 생겼고 실천에 옮길 일만 남았다.

친구로부터 깨닫게 된것이 중학교 2학년 1학기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기 중이니 무조건 듣기만을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주변 친구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흔히, 이슈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했고 그 이슈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있더라도 말을 꺼내지 않았도 그저 웃고 듣기만 했었다.

내가 알고 있다 한들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자리는 아니며,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도전! 골든벨에 나갈 정도의 지식이 아니라 공감하고 그룹에 참여할 줄 아는 법이었다. 그때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흥미가 없다 할 지라도 기본 개념이라도 알거나 또는 살아가면서 변하는 사람들이 논하는 몇 가지 대표적인 주제에 대해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이유 한가지는 스스로 참는 법을 배우려는 목적이었으며, 제일 주된 목적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행동을 스스로 절제할 줄 알아야 말실수를 하지 않을 판단력이라는 것을 기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듣기만을 반복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었을 때엔 누군가 나를 찾기 전까지는 다른 누군가를 찾지 않았다. 아직 욕심일 것이다. 방학 동안 학원과 집만을 반복하고 이외에는 나에 대한 발전만을 생각했다. 자기개발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과 문화를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만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배우고자 하는 친구를 목표로 삼았다. 나를 일깨워 주었던 친구는 학교에서 나름 잘나가는 편에 속했다.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었고 자신에게 몰두해야 할 때와 즐길 때를 구분하면서도 그 중심이 잘 잡혀있는 사람이다.

그 친구를 분석하고 배우고자 했다. 막연하게 같은 학원을 다니고 항상 옆에 붙어 있었고 그러면서도 귀찮게는 하지 않았다. 나름 인간 '나'의 뮤즈로 삼았다.

여전히 그 친구에 비해서는 부족하다. 분석하고 공부해서 사람이 되어 그런가 아직까지도 생각하면 어렵지만 생각이란 걸 포기하기 마음 먹었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배운 것은 행동에 중심이라는 것이 있다라는 것 정도다.

열심히 배우고 발전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사람이 생각이란걸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는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지금 꺼낼 이야기는 아니다. 아직까지도 성장 중인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코 마땅한 방법일지는 모르겠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의 흐름상 나중에 말하겠다.

그렇게 나에게 중심이란 걸 잡아 보았을까. 쓸데 없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유 없는 행동만을 하고 말하기 전에 해도 괜찮은 타이밍과 말인지를 생각하고 말한다. 말을 할 때 흥분하며 격양되지 않는다.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말이 결국에는 이성적이어야 한다로 통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방학까지 보내고 나는 비로서 평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