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문제인지 모른 채로 여전히 똑같이 살아갔다. 생각해보면 그때엔 그냥 한번 나서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했던 것 같다. 문제가 내 안에 있는지 모른 채 스스로 받아들이겠다, 그게 나다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무모한 자기결정이었다. 그 문제가 사람들과의 단순한 가치관, 시각의 차이었으면 모를까.

그래도 다 잃지는 않았다. 아니 놓치지 않았던게 있다. 나에게 언젠가 도움이 될 것 같았던 그 친구를 여전히 쫓아다녔다.

무작정 그 친구의 마음, 생각도 따라 해보고 싶었다.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친구이지만, 그래서 더 놓칠 수 없는 친구다.

 

 

결국 중학교 1학년 때의 그 직감이 큰 행운이었을까, 나를 바꾼 한마디 말을 들은 순간이 있다.

평소에 나댄다거나, 안 좋은 별명으로 불릴 때면 짜증도 나고 화만 났었다.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아서기도 했고 그만 그 허물을 벗어던지고 싶었던 욕구가 더 컸다.

그래도 대놓고 따돌림을 당한다거나 맞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무시는 좀 받았을까, 그건 뭐 재미없는 애가 재미있어 보이려 한다고 그래 보일까.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싶었을 거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버려야 할 부분을, 되고 싶어 하는 이상을 붙잡고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과 살릴 수 있는 장점을 구분하는 법을.

 

 

평소와 같은 하굣길, 그 친구와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때도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면서 뭐라도 있는 것 마냥 행동했었던 것 같다. 그때 들은 한마디.

"작작 좀 나대라."

생각이 멈췄다. 수 없이 들은 말이고 꼬리말 같이 따라붙었던 말인데, 그 무게가 너무 달랐다. 친구는 기억도 못하고 있지만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떤 심정으로 얘기했는지 알 수는 없겠지만, 그 의미가 참을성을 다하고 나온 한마디였던 중요하지 않다. 그냥 바로 들었던 생각은

"내가 문제였다."

나도 왜 친구의 저 말에 평소와는 다르게 들었고, 갑자기 한순간에 내가 문제였다고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있던 건지, 그래서 큰 일침으로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가 문제인걸 깨달았다는 점이다.

 

 

집에 들어오고 큰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본 글이 하나 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고, 인간성이라는 모든 부분에서 사람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국민 MC '유재석'이 하셨던 글귀들이었다. 그중에 하나,

"사람들에게 나를 인식하게 하는데에 있어서 제일 좋은 방법은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많이 들어주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조금은 다른 수 있겠지만.

그동안에 나를 돌아보았다. 주변 사람들의 말보다 주목받기를 원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가 잘못해왔던 생활 때문에 내가 나를 버려왔구나 싶었다. 그때 큰 다짐을 했다. 

  1. 말 수를 최대한 줄이고 모든 말들을 듣고 친구들의 관심사를 알아내자.
  2. 친구들 사이에 떠오르는 주제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3. 하루에 내가 한 말들을 떠올리자. 그리고 내 생각에 무례했다면 의도가 어찌 되었든 사과의 메시지를 보내자.

다짐을 할 때에는 존재감 있는 나는 이미 없애버린 뒤였고, 욕심이라 생각했다. 일반적인 삶이라도 찾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공이었다.

한순간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정확하게 알기보다는 그때의 나로 조금이라도 똑같이 비치지 않기를 바랐다.

학교에서는 내가 어느 위치에 있던 친구들의 말을 듣기만을 반복하고, 한순간도 들뜨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조용히 집을 가서 나오지 않았다. 불러주기 전까지는 아직 그럴 자격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지금의 다짐들이 무산되는 행동과 말을 할까 봐 가능성을 막아두고자 했다. 그렇게 반년에서 일 년 가까이 지냈던 것 같다.

 

내 주변에 같은 문제가 계속 생긴다면, 그 문제를 나에게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무너질 수도 있고 변화할 수 있을까란 가능성을 찾기 힘들 수 있다.

더군다나 변화를 한다 하더라도 이미 나의 이미지는 굳어진 게 아닐까 겁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생각한 것은 나에게 기회라는 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하루 끝을 돌아보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 그것으로 만족한다.

 

결과를 바라고 행동하지 말자. 행동 끝에 결과는 내가 원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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